무명베 길쌈의 현주소

단국대 석주선 박물관 고부자


1995년 8월 현재 목화를 심는 곳은 경남 산청군 단성면 사월리 문익점 면화 시배지와 경남 의성군 금성면 대리, 목포 농업진흥청 시험지, 전남 다시면 신풍리 그 외 시골 노인들이 이불솜을 마련하느라고 특별히 심는 정도이다.
"노인들이 미영베 안하면 죽는 줄 알았다" 고 할 만큼 무명은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의료이며 부업이었다.


무명은 1960년대 말까지만 해도 간혹 시골에서 노인들에 의해 생산되었으나 현재는 전남 나주군 다시면 동당리에서 노진남(59세)씨와 동서 김흥남(56세)씨에 의해 겨우 명맥만 이어지고 있다. 노씨는 시모 김만애(1907년생) 씨의 뒤를 이어 1990년에 국가 지정 무형문화재 제121호 나주의 샛골나이(길쌈) 기능보유자로 지정되었다. 노씨는 너비 35cm짜리 9세를 짜는 정도이나 판로가 없으므로 1년에 약 5~6필 정도 짤 뿐이다. 이것도 기능보유자이기 때문에 국가에 출품해야 할 때나 겨우 짜고 있다.
다행히도 금년 여름에 국립민속박물관의 요청에 의해서 약 1개월간 노씨와 김씨가 씨앗기. 고치말기, 물레잣기, 베짜기, 등 베짜기 과정을 시연하여 관람자들로부터 많은 관심을 끌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무명길쌈은 나주 샛골나이가 유명했다. 샛골은 전남 나주군 다시면 신풍리의 지명이며 나이는 길쌈이란 뜻이다. 무명은 닷새에서 열닷새까지 짰으며 아홉새만 넘으면 고급이라 하여 주로 남성용 외출복으로 쓰였다. 현지에서 무명값은 1필(20자 너비 35cm)에 1960년대 말에는 8승이 1000원, 12승은 1500원 1995년 7월에는 8승모(반)에 250000원에 거래되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목화 재배나 무명길쌈은 다른 천연섬유인 삼베나 모시 명주에 비해 전승문제가 가장 크게 대두되고 있다. 그 첫째 이유는 수공이므로 재배 제작과정이 힘들고, 둘째는 수공에 비해 수지가 맞지 않고 따라서 판로가 없기 때문에 생산할 의욕이 없게 되었다. 솜옷이나 솜이불에 쓰였던 목화는 다른 대치 물건들이 많으므로 필요없게 되었으며 무명은 기계로 짜내는 다양한 면류에 의해 설자리를 잃고 말았기 때문이다.

또한 현재 지정된 기능 보유자는 나이가 들었고 후계를 이를 젊은 연수생도 없다. 따라서 더 이상 무명길쌈에 대한 기대는 희박한 실정이다. 더구나 값싼 중국 솜과 무명의 범람은 더욱 큰 저해요인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