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 거는 희망

이호림(도서출판 인간과자연사 발행인)


우리는 누구도 더 이상 타인일 수 없다


사르트르는 “타인의 눈은 지옥”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타인의 눈이 냉혹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타인의 눈을 의식하는 주체의 자의식을 표현한 것이다.


첫머리부터 ‘타인의 눈’을 언급한 이유는 대구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이 있는 필자 자신의 자의식 탓일 것이다. 필자는 서울사람이면서도 대구에 자주 드나들면서 대구에 대해 이미 남다른 애정을 느끼고 있기에 더 이상 ‘타인’이 아니라 ‘이웃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출판사 관계 등의 일로 대구 시민들을 많이 접촉하면서 서울이나 다른 지역 사람들과는 다른 대구인들 만의 정서적 공감대를 어렴풋이나마 느끼게 되었다. 거기에는 우리나라의 산업발전에 역사적 기여를 한 것에 대한 자부심 못지않게, 그들 자신이나 대한민국의 장래를 위해 반드시 극복되어야 할 요소도 내포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녹색평론」의 새 문화 심기


그러나 필자 역시 얼마간의 선입견이나 편견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필자는 출판인이기에 “대구를 보면 녹색평론사만 보인다”(박광숙)는 조금은 과장된 표현조차도 무엇에 앞서 출판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로서 의미 있게 받아들이고 싶은 것이다.


95퍼센트 이상의 출판사들이 상업적 편의를 위해 서울에 소재하고 있는데, 녹색평론사는 대구에 있으면서도 우리나라의 생태환경과 관련된 담론을 주도하고 있다. 아무리 작은 출판사일지라도 수많은 사람들의 지속적인 협력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는 점에서 볼 때, 이 출판사가 대구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은 중요한 의미를 지닐 수밖에 없다.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업적 이익과 무관한 잡지(녹색평론)를 86호까지 내놓고 있다는 사실은 거의 기적에 가깝다. 게다가 이 출판사는 뜻 깊은 단행본들도 꾸준히 출간하고 있다. 예컨대 ‘오래된 미래’는 성자들의 나라 티베트의 생활방식을 통해 세계화에 따른 개발지상주의의 반작용과 그 폐해를 되돌아보게 했다. 이처럼 녹색평론사는 중앙의 문화독식과 편식증에서 벗어나 척박했던 지방문화를 일깨우면서, 양질의 문화를 지역에서 전국으로 확산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전통의 대구답게 피어나고 있는 이러한 희망의 싹들을 돌이켜보면서 필자는 대구 시민들에게 의견 삼아 몇가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필자는 요즘 대구 문화의 허파 구실을 해온 ‘(주)제일서적’이 빈사 상태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음을 괴로운 심정으로 지켜보고 있다. ‘제일서적’은 지금 36년여의 소중한 역사를 뒤로 한 채 사활의 기로에 서 있다. 이러한 난관은 경제적 불황과 관련된 도서 구입 감소, 인터넷 서점과 대형 서점 등의 지역진출, 전자매체를 통한 값싼 오락물 등의 범람에서 비롯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모든 원인이 외적 요인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미래를 내다보지 못한 ‘제일서적’의 안이한 경영과 독자관리의 부실도 이러한 화를 자초한 요인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제일서적의 현재의 처지는 필자가 은연 중 이 지역에 대한 유감이 싹트게 만든 하나의 원인이기도하다. 대구의 문화가 피폐해지다 못해 이제는 불모에 가까운 도시가 되고 있는 증거가 아닐까 하는 우려가 앞서기 때문이다. 지역문화의 발전은 해당 지역에 뿌리내린 다양한 문화적 주체들이 얼마나 건실하게 제 역할을 다하며 오랜 기간 존속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특히 문화의 건강성을 담보하는 지속성은 그 자체로서 문화적 전통을 형성하면서 지역 주민들과 함께 문화를 고르게 향유할 수 있는 조건이 된다. 이는 문화의 산업적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오늘날에 더없이 중요하다.


지역에 만연한 불합리를 거둬들이자


이런 점에서 필자는 대구 시민들의 문화에 대한 인식이 어떤 상태인지 늘 궁금했다. 필자가 돌아본 대구 시내 중심부는 서울 못지않게 활력이 넘친다. 하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해묵은 불황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그리고 그곳에 사는 분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여러 가지 불만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온다. 이 가운데 늘 등장하는 단골 메뉴는 정치 이야기인데, 사안을 조리 있게 파고들기보다는 모든 잘못은 상대에게만 있다는 식으로 전개된다.


스스로에 대한 반성적 성찰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들과의 대화를 통해 얻은 필자 나름의 결론은, 대구 시민들의 정치적 염원과는 사뭇 다르게 지역이 얻은 실질 소득은 아무것도 없는듯하다는 것이다. 물론 이들이 토해내는 불만에 공감이 가는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들의 목소리에는 아직도 옛 정치권력에 대한 향수와 만성적인 심리적 의존성이 깃들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서민정서를 쉽게 알 수 있는 곳은 대중교통과 대중음식점 등이다. 필자가 대구를 6개월 여 드나든 기간 동안 이용했던 대중교통은 철도와 고속버스였다. 철도는 국가 기간산업인 동시에 국민을 위한 서비스 업종이다. 그렇다면 대구 시민과 외지인들을 위해서 현재 시설을 현대화시킨 대구역에 KTX를 정차시킬 수는 없는 것일까?  필자가 대구를 드나들 때마다 아쉽게 느끼는 대목이다. 서울역이나 대전역, 부산역을 기억하는 방문자라면, 지금의 동대구역을 빠져나올 때 느끼게 되는 다소의 황량함과는 다른 느낌을 받고 싶은 것이다. 대구시민도 그러하겠지만 특히 외지인은 긴 여행 끝에 목적지에 도착해, 역 출구를 막 벗어났을 때는 그 도시 특유의 정서와 힘을 감회와 함께 느끼고자 한다. 지역을 맡아 행정하시는 분들은 이와 같은 점을 세심하게 배려하고 반영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것이 지자체가 중요하게 여기는 홍보의 시작이자 끝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고속버스에 대해서도 다른 도시와는 다른 어색함이 느껴진다. 시내 노선버스와는 분명 다르므로 고속도로 인근에 터미널을 갖추고 인터체인지를 통하여 가고자 하는 지역으로 신속히 이동해야 하는 것이다. 이 또한 서울이 그렇고 부산 등 다른 도시들도 그렇게 바뀌어가고 있다. 그런데 대구의 고속버스 운영 실태는 어떠한가? 고속버스가 이웃해 있는 동대구 인터체인지로 바로 나가는 것이 아니다. 동대구 터미널에서 일단 출발하면 서부 정류장으로 가서 손님을 한 차례 더 태우고 서대구 인터체인지를 통하여 고속도로에 진입한다. 얼핏 보면 지역민에 대한 편의를 고려한 듯하지만, 지하철이 개통되기 전과 후는 다른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대도시를 관할하는 대구시의 전근대적이며 소아병적 불합리 행정 중의 하나로 생각할 수 있다. 대구 북부 지역에 한해서는 서대구 터미널을 이용하는 것이 고속도로 진입 등에 더 효과적이라는 것이 또 하나 내세우는 이유이지만, 이것도 어느 것보다 우선해야 할  고속버스의 일차적 기능을 무시한 처사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무엇보다도 교통 체증에 몸살을 앓고 있는 대도시의 도심을 30여 분 이상 지체시켜가며 관통해도 되는 것인지 즈음에서는 도무지 이해 할 수가 없다. 관계자에게서 이 불합리한 처사가 지역 국회의원의 공약 사업이라 어쩔 수 없었다는 소리를 듣고 필자는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대구 시정(市政)은 어디로 간 것이며, 이는 지역이기주의에 개인이기주의가 더해진 대구 지역만이 갖는 불합리의 표본이 아닐 수 없다.


사회적 무기력증과 그에 따른 거칠음


방문자들은 대중음식점에서도 다른 지역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이상한 광경에 부딪치게 된다. 주문한 밥과 반찬들이 쟁반에 담긴 그대로인 채 식탁에 놓여진다. 대구의 식당들 가운데 열에 여섯, 일곱은 이런 식으로 손님을 대접한다. 그런 모습은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셀프서비스나 쉬운 상차림 등으로 보아 고개 끄덕이면 그만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요즘 이 지역에 알게 모르게 만연되어 있는 총체적 불만과 착종된 사회적 무기력증이 그런 식으로 불거져 나오는 것이라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언제나 근본과 도리를 따질 줄 아는 대구 사람들이 외지에서 온 손님들에게 보이는 그런 모습은 예의는 고사하고 성의 없는 행위로 비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방문자들은 그것을 불친절로 여기고 당연히 모욕감으로 느끼거나 불쾌해질 수밖에 없다.


각 나라와 지역들에는 그들만의 고유한 문화가 있다. 그래서 방문자들에게 자기네의 고유풍속을 있는 그대로 정성과 친절을 다해 보여준다. 우리가 문화의 진수를 맛보았다고 말하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대접을 받았을 때다. 필자의 짧은 소견으로만 보아도, 예전의 대구는 분명히 그들 나름의 삶의 기품과 예의가 남달랐다.


필자가 대구에서 겪은 불합리한 현상과 이상한 광경을 먼저 이야기한 것도 대구의 전통에 대한 기대감이 너무도 쉽게 무너진 데에서 비롯된 반사 심리일 수도 있다. 대구에 불어 닥친 이 같은 달갑지 않은 변화의 바람에는 분명히 어떤 원인이 있을 터이고 짐작되는 바가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언젠가부터 싹터온 바람직하지 않은 문화를 일소하고, 대구 지역 특유의 품격과 가치를 복원시키는 일이 무엇에 앞서 시급하다.


문익점 선생의 실사구시 정신을 기리자!


대구가 속해 있는 영남지방은 조선시대에는 유학의 본산이었고, 일제 강점기에는 독립운동가와 우국지사들을 많이 배출하였으며, 해방 이후에는 우리나라 산업 근대화의 중심이 되어온 곳이다. 특히 대구는 우리나라 산업화 초기의 중심 산업이었던 섬유산업이 꽃핀 곳이다. 이런 점에서 이곳 사람들에게 가장 존경받을 만한 역사적 인물은 삼우당(三憂堂) 문익점 선생이 아닐까 싶다.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문익점 선생은 최초로 우리나라에 목화씨를 들여와 재배하신 분이다. 목화는 그 당시에는 말할 것도 없고, 지금도 인간이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물질이다. 따라서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이분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마음 깊이 새겨두어야 한다. 특히 대구 시민들은 그분에 대해 남다른 애정과 관심을 가져야 마땅할 것이다. 왜 그런지는 대구 경제가 제일 좋았던 시절이 언제쯤이었고, 그 때의 중심 경제재는 무엇이었는지를 따져보면 잘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대구에 있는 동안 문익점 선생과 섬유공업도시와의 연관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있는 분은 거의 보지 못했다. 이와 같은 대구시민의 모습은 지역에 실사구시 정신을 일깨우고, 경제적 바탕을 마련해준 분에대한 도리가 아니며, 지금까지 대구시차원의 기려드리는 제전 하나 없는 것을 보면 한마디로 은인에 대한 배은망덕한 자세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또한 대구시민들의 근본을 놓고 볼 때 도저히 이해 할 수가 없다.


섬유산업도시로 입지를 굳힌 대구는 지금 패션의 중심지로 도약하려 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보더라도 문익점 선생과 목화, 그리고 대구의 섬유산업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임을 금방 알 수 있다. 그리고 아무리 인조섬유가 범람하는 사회에 살고 있지만 ‘자연섬유’라는 점에서 목화가 차지하는 상징성은 거의 절대적이다. 국내에서는 섬유산업을 낙후된 것으로 보는 경향이 있지만, 이는 실제와는 거리가 먼 편견에 불과하다. 세상이 아무리 IT산업 등 첨단산업의 고부가 가치를 선호한다고는 해도 섬유산업에 기초한 패션산업이 죽었다거나 줄어들었다는 소식은 어디에서도 들려오지 않는다. 인간은 의생활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섬유산업은 대한민국 판 산업혁명에 비견될 수 있을 만큼 산업적 입지를 최초로 닦은 역사성을 띠고 있다. 그런 점에서 대구는 우리나라 산업발전의 본산이다. 오늘날 세계적인 기업으로 자리 잡은 삼성그룹도 ‘삼성전자’ 이전에 ‘제일모직’과 ‘제일합섬’ 등을 바탕으로 오늘의 입지를 굳혔다. 삼성그룹의 ‘제일합섬’과 마산의 ‘한일합섬’ 등이 1977년 우리나라가 최초로 수출 100억 달러를 달성했을 당시의 주역들이었다. 이런 사실은 국가적으로 매우 큰 의미를 갖는다. 이는 다르게 말하면 우리나라의 수출산업은 영남지방, 그중에도 대구의 섬유산업에서 시작되어 오늘날의 IT산업 등으로 성장해왔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문익점 선생은 우리나라 섬유산업의 먼 기원 속에 홀로 우뚝하신 분이다. 이런 점에서 문익점 선생의 탄생지이자 최초의 목화시배지인 경남 산청 지방의 지역민과 이를 산업으로 일군 대구시민들은 자부심을 한껏 누려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의 대구는 국내 세 번째 큰 도시로서 자부심을 누려도 좋을지 의심할 수밖에 없을 만큼 무력증에 빠져 있는 것 같다. 통계로 보면, 이 지역의 다양한 산업들은 명목상의 나열일 뿐 경제적 동력을 상실한 지 이미 오래다. 인근에서 발전한 구미에 비해서도 저만치 뒤떨어져 있다.


2005년 비공식 통계에 따르면 구미는 국내 총 수출고의 10퍼센트 이상인 300억 달러 수출을 달성하고 시 차원의 대대적인 축하행사를 가졌다고 한다. 하지만 대구는 같은 기간 내 34억 달러 수준에 그치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모든 기초 경제단위의 희망수치가 한자리 수 미만에 머물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다가는 지방화 시대의 재정 자립도는 고사하고 현 대구시의 원대한 청사진과도 크게 다르게, 중앙정부에 의존하여 꾀죄죄한 시정을 펼칠 수밖에 없는 꼴이 될지도 모른다.


무력증의 원인은 무엇인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필자는 한마디로 대구 시민들이 시민 모두를 위한 정치가 아니라 야심만을 앞세운 몇몇 분들의 허황됨과 급조된 정치논리에 현혹되고, 이에 휩쓸리게 되다보니 깊은 수렁에 빠진 것이 주원인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그런 까닭에 70년대 우리나라와 대구의 경제를 선도하며 경제개발의 과실을 맛보게 했던 섬유공업을, 이후 적절한 연구와 개발을 제때에 할 수 없었던 잘못된 환경이 급기야는 섬유산업을 사양 산업으로 전락시킨 결과가 되지 않았는가 한다.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 감히 한 말씀 더 드리고자 한다. 이즘 대하는 대구 시민은 내면적 실체보다는 외형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듯하다. 유구한 전통에서 쌓여진 지역의 근본은 제쳐두고 필요 이상으로 패거리 현실정치에 민감하다 보니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지역민 특유의 화끈함이 긍정적 에너지원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부정적으로 작동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한다.


 근래 대구에는 이상하게도 여러 유형의 대형 사건들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한때는 돌이키고 싶지도 않은 최대의 지하철 참사도 겪었다. 그때 우리 국민은 대구 시민들을 가슴 아프게 바라보았다. 지금 이 시각에도 서민들의 생활 터전인 서문시장이 화재로 인해 참담한 몰골을 드러내 놓고 있다. 피해자들이 하나같이 서민들이라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중앙정부 차원의 종합대책이 시급히 세워져야겠지만, 이러한 사건들은 결국 지역안정이나 시민들의 정서에 당연히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민심이 불안해지다보니 말씨와 행동도 거칠어질 수밖에 없다. 대구는 전통적 대도시답지 않게 치부가 계속 불거지고 있는 듯하다. 이제는 더 이상의 불상사는 용납될 수 없기에, 하루속히 그 근본원인을 찾아내서 사전에 예방하는 체제를 갖추어야 한다.


문익점 선생의 나라사랑이 왜 서울이나 광주, 부산이 아닌 이 대구 지역에서 싹터서 한국경제의 텃밭을 일구어내게 되었는지, 이차에 대구시민은 다시 한 번 되돌아보아야 하는 것이다. 대구 시민은 이 텃밭의 경제성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가지 못한 까닭이 무엇인지, 지금이라도 절절하게 따져보아야 할 것이다. 거기에서 재도약의 계기가 발견될 수 있다고 필자는 확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라도 정치권력에 대한 관심은 잠시 접어두고 지역 전통에 대한 자부심을 바탕으로 지역 경제를 살려나가야 한다.


그런 다음 그 동안 이 지역 민심을 토대로 정치적으로 득세한 분들의 처세도 지적할 수 있어야 한다. 이들은 지역과 국가의 발전을 위한다는 정치 명분을 내세웠지만 애쓴 것과는 달리 결과적으로는 지역사회 전반을 끝 간대 없이 추락시켜 놓았다. 대구지역이 면면히 쌓아온 올곧은 전통을 뿌리에서부터 흔들어 놓은 것이다.


정치는 생물과 같아서 즉흥적이거나 어설프게 다루면 후에는 후유증이 거세게 돋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후유증의 무거운 짐은 지역을 지키게 마련인 지역민들이 고스란히 떠안게 마련이다. 현재 우리 모두가 안타깝게 지켜보고 있는 모습 그대로다. 따라서 이 지역의 재도약을 위해서는 모든 책임을 밖으로만 돌릴 것이 아니라 먼저 지역의 기존 정치인들과 이에 편승해왔던 또 다른 분들의 자성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지역민들은 이들에게 물어야 한다. “대구의 경제가 더없이 어려운 이때, 당신들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라고.


전통에 뿌리내린 대구만의 정신을 되찾자


지금도 늦지 않았다. 무엇보다 우선하여 대구가 소중히 지켜온 전통적 가치를 복원시켜야 한다. 문익점 선생을 이 지역의 실사구시 정신의 표상으로 삼아 무미건조하고 책임감을 결여한 정치과잉 등의 들뜬 정서를 타파하고, 널리 퍼져 있는 패배주의적 치기와 자학적 불신을 거둬들여야 한다. 문익점 선생의 나라사랑 정신과 함께 민족 자주사상 운동의 상징이었던 ‘국채보상운동’을 대구의 양대 정신으로 삼아 이를 대구만이 지닌 힘의 원천으로 삼아야 한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이러한 정신을 체험적으로 습득할 수 있는 공간, 즉 ‘섬유박물관’이나 ‘문익점기념관’ 등의 문화 공간을 마련해주어야 한다. 이와 함께 섬유산업의 연구와 개발을 통한 재건 의지를 종횡으로 다지고, 이를 발전시켜 나갈 인재 양성에 힘을 기울인다면, 머지않아 대구와 대구 시민에게 잠재되어 있는 특유의 열정은 활기차게 되살아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대구는 밀라노 못지않은 세계적인 섬유산업과 패션의 도시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정부가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정부는 대한민국의 산업발전과 대구의 섬유산업이 역사적으로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음을 새삼 깊이 인식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근대화 과정에서 이 지역이 담당했던 선도적 역할을 너끈하게 인정하고 지원 방안을 충분하게 논의해야 한다. 우선은 지역의 자존심을 지켜 주어야 한다. 다음은 섬유공업을 국가전략산업으로 지정하고 특별 예산을 편성하여 육성하는 일이다.


정부는 7년여 년 전 대구시가 시민의 염원을 담아 기획했던 ‘밀라노 프로젝트’를 지역만의 관심사로 방치하지 말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실천과제로 삼아 좀 더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경제가 향후 안정적으로 성장하기 위하여서는 지금의 IT산업, 기계 산업 등만으로는 부족하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하여서는 세계적으로 대량소비가 이루어지고 있는 의식주를 우선으로 하는 전통산업이 필요하며, 바로 여기에 안성맞춤인 것이 섬유산업인 것이다.


정부는 대도시 대구가 경제적으로 슬럼화 되었을 때 국가 전체에 미치는 악 영향이 어떤 것일지에 대하여서도 심사숙고하고 이를 조기에 차단하는 지혜를 발휘하여야 한다. 대한민국의 산업 발전에 관한 한 대구는 결코 변방이 될 수 없음도 분명하게 인식해야 한다.


삼성그룹은 “밀라노 프로젝트‘에 동참해야 한다


삼성그룹은 이 지역에서 입은 은혜를 생각해서라도 지역경제를 북돋우는 일에 적극 나서야 한다. 그것은 ‘밀라노 프로젝트’에 동참하는 차원에서 계열기업을 지역에 진출시키는 일이다.


밀라노의 섬유산업 성장 역사는 올해로 900여 년에 이르며 발전해 왔다. 대구의 섬유산업 성장 역사 또한 머지않아 700년에 이르게 된다. 삼성그룹은 대구에서 ‘삼성상회(삼성물산)’로 출발하여 섬유 전문 업체인 ‘제일모직’, ‘제일합섬’ 등을 세웠고 1970년 대 전후, 정부의 수출드라이브 정책의 전폭적인 혜택을 입었다. 즉 대구 섬유산업의 발전역사는 곧 삼성그룹이 오늘의 터전을 일군 성장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섬유산업이 명맥을 이어가며 발전을 거듭하려면 정부와 대구 시 그리고 삼성그룹 3자 간의 특별한 협력이 따로 있어야 한다. 세계적인 기업일수록 연고하는 지역을 분명히 하고 있다. 섬유산업에 관한 한 밀라노 같은 역사적인 도시의 후광이 기업 활동의 신뢰기반을 더욱 뚜렷하게 하는 것으로 알고 있으며, 이와 같은 도시의 전통은 한나라의 지역 간 균형발전을 도모하는 데도 기여할 수 있다.


 이런 일들이 가능해진다면, 우선은 이 지역의 전통적 기풍이 회복되고 그간의 허망한 삶과 불안정한 정서도 극복될 수 있으리라 본다. 그 바탕 위에서 대구의 경제와 문화는 다시 한 번 날개를 펼 수 있게 될 것이다.


필자는 대구를 통하여 비로소 문익점 선생님의 목화씨앗 도래와 대한민국의 산업 발전이 갖는 역사적 의미를 바로 볼 수 있게 되었는데, 이는 결국 대구 경제가 살아야만 대한민국의 경제가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음을 알게 해 준 소중한 기회였다.


대구를 상징하는 꽃은 목화여야 하는 것을


아울러 지역을 상징하는 꽃도 눈부시게 피었다가 맥없이 뚝뚝 떨어져버리는 지금의 목련이 아니라 목화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선정 기준이 단순히 꽂이 예뻐서가 아니라 지역과 상관하여 역사성 등에서 진정한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 먼저여야 하기 때문이다. 목화는 꽃도 볼 만할뿐더러 산업에 대한 상징성에서도 이 지역과 깊은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조선조 영조 때, 정조의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가 세자비로 책봉된 것도 그런 까닭에 연유했다. 무슨 꽃을 좋아하느냐 하는 영조의 물음에 목화를 좋아한다고 대답한 혜경궁 홍씨는 “왜 좋아하느냐”고 재차 묻는 임금님께 “꽃도 완상할 만하고 백성들의 의복이 되어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대답하였다. 혜경궁 홍씨의 목화에 대한 생각, 백성에 대한 생각, 이는 오늘날 대구에서도 그 의미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끝으로 대구 시민의 안식처이자 문화공간인 ‘제일서적’이 살아나는 데에 대구 시민의 몫이 크다는 사실을 재차 강조하고 싶다. 대구 시민 여러분은 서점이야말로 해당지역의 문화를 진작시키는 데 가장 큰 힘이 된다는 것, 그리고 서점과 그에 따른 공간은 소유관계와 무관하게 그 자체로서 대구 시민 모두의 자산이요 힘이라는 사실을 헤아려주시기 바란다.


그것이 긴 역사를 갖고 있는 향토서점이라면 더욱 소중할 수밖에 없다. 서점이 즐비했던 지난날의 중앙로와 동성로는 이제는 빈자의 거리로 내몰려 허전한 거리가 되고 말았다. 마치 그 모습이 오늘 대구의 총체적인 실상을 보고 있는 듯하여 씁쓸하다.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 필자는 문익점 선생의 실사구시 정신과 영남지역의 위대한 문화적 전통과 자주독립정신이 대구에서부터 되살아나 대한민국 전체로 힘차게 퍼져나가기를 간절히 염원하고 있다.  대구와 대구 시민들의 발전과 행복을 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