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 솜

                   김여화


오후 내내 햇솜을 얻기 위해 미영 씨를 까발리느라고 손톱이 아팠다. 근년에 들어서 귀하디귀한 이 목화, 혹은 솜꽃, 우리 동네서는 미영이라고 하는 솜꽃을 따 와 솜에서 씨를 분리하는 특별한 행운을 얻었다. 어린 시절 시암골에 가면 골짜기 사래 긴 밭은 해마다 목화를 심었다. 물론 우리 밭은 아니지만 밭근처에 외할머니 산소가 있기에 그 골짜기는 자주 다니는 편이었다. 할머니의 유언이 외손자들 보고 싶으니 날마다 보내라고 하셨던 때문에 우리는 자주 시암골에 놀러가기를 즐겼다. 거기에 가면 꾸지뽕 열매라든가 겨울에도 고염이나 돌감이 나무에 매달려 있고 봄이면 칡순이나, 찔래순이 자라서 우리들의 주전부리가 많았던 탓도 있다.

목화는 그 잎이 넓고 꽃잎도 크다. 연한 빛의 노란 꽃이 수정이 되면 보라색이나 분홍으로 변한다고 들었다. 꽃이 지고나면 맺히는 것이 다래인데 이 다래가 영글어 이런 가을쯤이면 저절로 갈라져서 흰 솜을 물고 있는 것이다. 열매가 삭과이기 때문에 자연 벌어지는 탓이다. 아욱과라해서 그런지 이파리도 거의 아욱 잎과 비슷한데 예전에는 목화를 소중히 여겨서 다래를 따 먹는걸 막기 위해 밭에서 지키기도 하였다. 열이 한 도둑을 못 지킨다 했듯이 우리는 곧잘 이 다래를 따먹기 위해 시암골을 찾곤 했다.

   거의 잊혀졌던 목화를 본 것은 10여 년 전 순천 낙안읍성에서 음식축제가 처음으로 열리던 때다. 그곳 초가집 울 가에 목화가 피어있고 서숙 등이 어린 시절 보았던 고향동네마냥 익어가던 가을날이 생경한 풍경으로 다가왔다. 우리 손으로 목화를 심기는 사십 여 년 전이니 요즘에야 누가 목화를 심어 딸 시집보낸다고 애지중지 하는 이 없다. 오히려 근년에는 목화를 잊혀지는 옛 고향의 정취를 살리기 위해 일부러 관상용으로 가꾸는 자치단체가 생겨났다. 우리 동네도 예외는 아니다. 그곳 면장님이 타 군에 가서 어렵게 목화씨를 구해 와서 면내에 도로주변 화단에 모종을 심고 가정에 나누어 주어서 올해 첫 수확을 하게 된 것이다.

   면사무소 근처에는 잘 가꾸어져 실하게 자라고 다래도 크고 따라서 하얀 솜이 크게 벌어 있었지만 메마른 산길 도로가에 심은 것은 비료를 주지 않아서 아주 매 말라 겨우 한두 개의 다래를 달고 겨우 하나 둘씩 솜꽃을 피웠다. 서리가 온 요즘에도 아직 덜 익은 다래가 붙어있는가 하면 오래전에 피어 솜이 빠져 있는 것도 더러 있다. 씨를 구하기 위해 주머니에 따다가 사무실서 미영 씨를 발기는데 그게 쉽고도 어려운 일이다. 제법 손톱이 아플 정도로 말이다. 마흔 살 정도의 사람에게 다래를 보여주며 아느냐고 했더니 어릴 적에 따먹었노라고 대답했는데 하지만 이제 서른 정도의 사람들은 다래가 뭔가요? 미영이요? 목화? 반문하기에 설명해 주는 것을 포기했다.

   지난여름 장마가 끝나고 시집올 때 해왔던 목화솜 이불을 뜯어 세탁기에 돌렸다. 예전부터 솜을 빨면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더구나 30년 만에 빠는 이불솜은 많이 때가 끼었다. 그래도 세탁기가 저절로 빨아주니 예전보다는 얼마나 쉬운가? 겨울에 틈나면 솜을 틀기위해 다 말려서 싸매 두었다. 솜을 뜯어보니 요로 사용했던 건 아이들 키울 때 더러 오줌을 쌌기 때문에 제빛이 아니지만 덮는 이불은 빨아 말리니 햇솜처럼 뽀얀 것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친정어머니는 나를 시집보내면서 이불솜을 넣을 때 요는 가운데 조금 값이 헐한 솜을 넣어서 늘 그게 마음이 아팠노라고 하셨는데 과연 빨아보니 다르긴 다르다.

   요 솜은 여러 차례 빨았지만 뽀얗게 되질 않는 것이다. 오늘 도로가에 가서 목화씨를 받기위해 몇 송이 주머니에 따가지고 들어와 씨를 발기는데 그것이 쉽질 않다. 목화씨를 원나라에서 가져온 문익점 선생은 붓두껍에 숨겨 가져오셨다는데   예전 같으면 씨아로 돌리면 금세 하련만 씨아가 있을 리 만무다. 면사무소도 씨를 받기위해 진작 목화를 딴 걸로 알지만 너무 적은 이걸 가지고 씨아를 빌리러 갈 수 도 없다. 몇 시간 동안 씨를 발기는데 미영씨알이 제법 많다. 한 송이는 사각으로 터져 각마다 조각이 네 개가 있고 하나마다 씨는 다섯 개씩 그것도 거의 같은 형태로 씨가 박혀있다. 그러니 한 송이에 씨가 스무 개씩 든 셈이다. 작은 방석 한 개 쯤의 솜이 모이고 씨는 한 움큼이 된다. 까만빛의 씨는 마치 쥐똥 같기도 하고 기름을 짜면 면실유가 될 것이다. 그 햇솜은 만져보니 지난번 빨았던 이불솜처럼 뽀얗고 부드럽다. 여러 사람이 햇솜을 만져보며 신기해하는데 문득 어린 시절 이 목화를 씨아로 돌려 씨를 빼내고 마당에 멍석을 펼쳐놓고 활시위로 튕기던 어른들 생각이 난다.

    물레질을 하고 솜에서 무명실을 빼던 할머니는 생각나지만 어떻게 했던지 확실히 기억은 나지 않는다. 씨를 빼고 그 솜을 놓고 활시위를 통통 튕기면 솜은 요즘의 솜사탕처럼 부풀어 올랐다. 참으로 오랜 세월 잊혀졌던 일이다. 할머니는 머리에 수건을 쓰고 활시위를 튕기고 나면 더불어 머리에 솜을 하얗게 이고 계셨다. 한 송이를 펴서 부풀리면 제법 커다란 솜뭉치가 되는데 햇솜은 참 귀히 여기던 것이다. 과년한 딸을 둔 집에서는 목화를 심고 햇솜을 장만하여 둥실둥실 커다란 뭉텅이로 두었다가 혼인날이 잡히면 동네사람들을 불러 마당에 멍석을 펴놓고 이불을 만들며 덕담을 하던 모습이 내 기억에 남아있다. 햇솜은 가볍고 보드랍기는 물론 그 빛도 희다. 볼에 닿으면 포근함이 더없이 고왔다.

   목화밭은 많은 사람들의 추억이 깃든 곳으로 기억된다. 어릴 적에 나처럼 다래를 따먹다가 들켜 혼났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만큼 목화에 얽힌 사연은 많다. 목화는 나무도 있다지만 우리가 심는 것은 거의 한해살이풀로 꽃이 접시꽃이나 무궁화처럼 생긴 것도 탐스럽고 꽃받침이 세 개가 있어 분홍빛을 내고 꽃은 희지만 노란빛에 가깝게 피었다가 보라색 또는 분홍색이 되어 진 다음 파란 다래가 달린다. 들척지근한 그 맛은 생과일이 흔치않던 시절에 참으로 좋았다. 다래는 쇨수록 솜이 되어가기 때문에 질기다. 그러기에 연한 것만 골라서 따야했다. 다래를 따내면 그만큼 솜이 적어지니 자연 어른들은 지청구를 하셨다. 다래를 먹으면 말하자면 솜을 먹게 되는 것이다. 햇솜의 보드라운 감촉만큼이나 떫으면서도 달던 다래맛, 내년에는 내 집 울 가에 심어 바라보아야겠다. 목화를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기도 하고. 햇솜을 만들어 쿠션 좋은 방석도 만들어야지…….

   빨아두었던 솜을 틀면 그것도 햇솜처럼 깨끗하고 보드라운데 이제는 내가 늙을 때까지 햇솜으로 남을 것이다. 그때는 누가 그 솜을 간직해 주려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