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화다래가 먹고 싶은 이유

                                         소설가 문순태


지난겨울 척수종양수술을 받고 나서 물도 마시지 못하고 누워 있을 때 뜬금없이 다래가 먹고 싶었다. 배고팠던 유년시절 목화밭에서 어른들 몰래 따 먹었던 다래가 왜 갑자기 먹고 싶었던 것일까. 어쩌면 그것은 내가 지금가지 살아오는 동안 가장 배고팠던 시절의 기억이 잠재의식 속에서 꿈틀거렸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열한 살 때 6.25를 만난 나는 누구보다 배고픔의 서러움을 겪어야만 했다. 궁핍의 그 시절, 배가 고팠던 아이들에게 다래는 가장 맛있는 간식거리였다. 가을걷이 전, 산에는 오디, 구지뽕 열매, 머루, 으름, 산다래, 딸기 등이 익고 있었지만 아이들로서는 산에 오르는 일이 쉽지가 않아, 목화밭으로 숨어들곤 했다. 목화밭에서는 실컷 다래를 따 먹을 수 있었고, 운이 좋으면 밭고랑에 저절로 열린 주먹만 한 개똥참외도 차지할 수 있어서 좋았다.


우리 마을에서는 집집마다 목화를 재배했다. 초가을이면 밭에 우북하게 눈이 쌓인 것처럼 목화가 하얗게 피어 온통 순백의 세상을 이루었다. 목화는 단풍이 들 무렵 백색이나 담황색 혹은 홍색으로 피지만 우리 마을에서 재배한 것은 모두가 흰 꽃을 피웠다. 목화는 두 번 꽃을 피우는 것과 같다. 흰 꽃이 지면 다래가 열리고 그것이 익으면 스스로 찢어지고 벌어져, 다시 흰 목화송이가 꽃처럼 피어나기 때문이다.


먹을 수 있는 목화 다래는 꽃이 지고 나서 갓 맺은 열매다. 그 맛은 육질이 부드럽고 수분이 많으며 달큼하고 상큼하다. 너무 익은 다래는 수분이 없고 섬유질로 가득 차 솜 씹는 것과 같다. 특별히 주전부리할 것이 없는 터라, 아이들은 즐겨 덜 익은 목화 다래를 따 먹곤 했다. 다래를 여남은 개 따 먹고 나서 샘물을 퍼마시면 한바탕 뛰어놀 수 있을 만큼 제법 요기가 되었다. 아이들이 극성스럽게 다래를 따 먹는 바람에 목화농사를 걱정한 어른들은 “다래를 따 먹으면 문둥이가 된다.”면서 한사코 말렸다. 나는 어느 날 학교에 갔다 도시락도 못 먹고 허기져서 털레털레 돌아오다가 비석거리 참봉네 목화밭에 들어가 실컷 다래를 따 먹었다. 그리고 그날 밤 어른들 말처럼 정말 내가 문둥이가 되면 어쩌나 하고 잠을 못 이룬 채 콩닥거리는 가슴 부여안고 끙끙댔던 적이 있다.


병원에서 퇴원을 하고 나서도 다래가 먹고 싶은 생각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케이크며 바나나 등 아무리 맛있는 것을 다 먹어 봐도 자꾸만 꿈틀거리는 기억속의 그 상큼한 다래 맛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이상하게 나이가 들면서부터 굶주렸던 시절에 먹었던 입맛이 되살아나면서 그것들이 다시 먹고 싶어진다. 찔레도 꺽어 먹고 싶고 송기도 벗겨 먹고 싶다.


앞으로 나는 목화 다래 같은 소설을 쓰고자 한다. 얼마든지 사 먹을 수 있는 바나나, 머스크멜론, 망고, 파파야 같은 과일보다는 본디 우리 땅에서 열매 맺은 토종 과일의 맛을 느끼고 싶다. 머루, 다래, 으름, 오디, 산딸기 같은 열매 맛을 통해 궁핍했던 고통의 세월과 가물가물한 무채색의 추억을 꼼꼼히 되작거려보고 싶다. 아직도 이 땅의 산에는 우리가 굶주렸을 때 즐겨 따 먹었던 산열매들이 찢어지게 열리고 있지만 사람들은 별로 먹고 싶어 하지 않는다. 너무 배가 부르고 입맛이 변해버렸기 때문이다. 나는 자극적이지는 않지만 은근하면서도 담박(淡泊)한 옛 맛을 통해, 자꾸 희미해져가는 내 삶의 근원을 찾아가려한다. 맛이 자극적인 외래 과일보다는 우리 마음과 정신 속에 자리 잡은 토종 열매의 은근한 맛을 한껏 느끼며 변질되어버린 우리의 오롯한 본디 모습을 되찾았으면 하는 것이다.


나는 지금도 목화 다래를 배부르게 따 먹고 문둥이가 되면 어쩌나 하고 잠 못 이루었던 시절처럼 늘 불안하다. 분명 무엇을 잘못 먹었기 때문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