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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書院) 소개

   * 각 서원 설명문은 한국서원이야기(http://cafe.daum.net/psj3851)에서 인용하였습니다
   * 서원에 관한 또 다른 정보를 "종친회서원"의 "남평문씨 서원"에서 볼 수 있습니다

서원(書院) 참고사항


서원은 1543년 주세붕이 세운 풍기의 백운동 서원이 효시이며 제사와 교육을 병행하였다. 재실은 제사만을 하는 건물로 교육기능이 없이 제사기능만 있어 규모가 작은 편이다


서원

서원은 큰 인물의 제사와 양반자녀의 사립 교육기관을 겸하였기에 세금이 면제되고 원생에 대해서도 역(役;병역)이 면제되었습니다.  
서원의 건물배치는 신실(신위를 모신곳)이 맨 위에 자리하고 신실 앞에 강당이 있으며 강당 앞의 왼쪽이 동제(고등반의 거실) 서제(초등반의 거실)로 구성됩니다.
서원에 모신 분들 중에서 가장 큰 어른을 주벽이라고 하는데  전국서원의 주벽은 충선공 諱익점公과 고려의 최영장군님이 가장 많습니다.

사액서원

사액서원은 국가에서 현판을 내린 서원으로  성균관과 대등한 교육기관으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조선 중종38년(1543년) 주세붕(周世鵬)이 설립한 풍기의 백운동(白雲洞)서원에 1550년(명종 5)에 임금이 소수(紹修)서원의 현판을  내리고 사액서원에 서적·토지·노비 등을 하사하는 법규를 마련하고 사서오경·성리대전(性理大全) 등의 서적과 토지 3결과 남녀종 1명씩이었으나 지방 사림의 정치적·사회적 기구화 되어 세력을 형성하고 각종 현물의 조달과 제공도 성행했다.

제재

1657년(효종 8)에는 사액서원의 제한은 노비 7명이었다. 1707년 역(役)을 피하기 위해 원생으로 등록하는 경우가 많아 원생을 20명으로 제한했다.
학연·지연에 기초를 둔 각 당파의 세력기반이며 가문의 자랑으로 여겨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여. 관공서의 업무에도 관여하고 풍속을 잡는다는 명분으로 백성들에게 제재를 가하기도 하였다.
1695년(숙종 21) 문묘(文廟)에서 제사를 받드는 인물 외에는 서원의 첩설(疊設)의 금지와 큰 인물이라고 해도 서원이 10개 이상 되지 못하게 하다가 714년에는 첩설(중복 설립)을 금지하고 사액을 금하는 령을 내렸다

철폐

1727년(영조 3)에  무단 첩설한 서원을 철폐했다. 고종 때는 860개 소중 사액서원이 260 여 개소에 소유전답은 전국의 10%에 달하였으며 교육기관들이 생겨나니 교육기능은 약화되었으나 폐해는 계속되었다. 1868년(고종 5)에는 대원군의 명으로 비 사액서원이 철폐되었고, 1870년에는 사액서원도 조사·철폐했으며, 1871년에는 첩설된 서원을 모두 철폐하여 전국에 47개만 남았는데 남평문씨는 사액서원과 일반서원은 모두 헐렸다

재건

조선 말기에 후손들과 지방 유지들의 협조로 철거된 서원을 재건하기 시작하여 많은 서원들이 복설되거나 신설되기도 했고 미 복설된 서원도 있으나 이는 후손의 재력이 기준이 되었다.